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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wall

근 영 이동규 이정희 홍신혜
2021.02.20-04.19

And all the roads we have to walk are winding
And all the lights that lead us there are blinding
There are many things that
I would like to say to you, but I don’t know how
I said maybe, yor’re gonna be the one that saves me
And after all you’re my wonderwall
 
Oasis의 노엘 갤리거는 『Wonderwall』은 ‘자기 스스로를 헤치는 당신을 구해줄 상상 속 친구’라고 표현했다. 반면, 리암 갤리거는 ‘(웃으며) 무슨 상관이야. 멋지면 그만이지’라고 Wonderwall을 추상적인 느낌으로 해석했다.
“Wonderwall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현대미술이 가지는 내재적이고 생래적인 고유성은 Wonderwall과 마찬가지로 은유적이고 모호하며 다변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같은 결을 갖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근영은 ‘나’라는 존재의 수레바퀴를 늘 새롭게 하지만, 더디게 굴려 댄다. 이렇게 스스로 발산한 빛은 조심스럽게 시공간을 유영한다. 이동규는 자아 즉, 나에 대한 탐구에서 현대 사회 속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 간의 ‘관계’로 확장되고 기대고 싶은 나약함, 맹목적인 헌신, 태초부터 공존하는 본능, 공허한 듯 다시 가득해지는 사랑 등 다양한 감정의 원인에 갈증을 느낀다. 이정희는 삶에서 갖는 기대와 행복, 그리고 그 이면의 불안과 무력감을 ‘꿈’과 같은 다른 실재 공간 또는 상상의 공간이나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경함을 주는 동시에 위안, 공감을 녹여낸다. 홍신혜는 자아의 정체성을 찾아 유일하게 깊은 숨을 쉴 수 있는 곳, 타인의 시선과 무력의 얼개를 벗어버릴 수 있었던 ‘숲’을 채워 넣는다.
물감의 흔적은 어떤 이에겐 자아를 찾아가는 길잡이가 되고, 관계의 진정성을 이식하며, 공간을 통해 평온함을 찾는 대상이 된다. 우리는 지금, 현재 속에서 과거와 미래를 함께 살며, 모든 것이 물신화(物神化) 된 패러다임에서 ‘Wonderwall’을 새롭게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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